추분에서 동지사이, 꿈이자라는뜰 간추린 소식
❉ 추분, 9월 23일, 16/24절기 ❉
- 계절이 바뀌고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론 쌀쌀하고, 낮에는 살짝 더운 느낌이 듭니다. 계절이 바뀌고 나이를 먹는 것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변화들(또는 받아들이는 것 외엔 어쩔 도리가 없는 변화들)을 온전히 수용하고 순응하려면, 변화의 흐름을 의식적으로 감지해보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땅콩을 거두어들였습니다. 잎이 무성한 것에 비하면 열매가 적었지만, 작년보다 더 많이 거두어들였습니다.
❉ 한로, 10월 8일, 17/24절기 ❉
- 한로 날 아침, ‘차가운 이슬’이라는 이름답게 수크령과 아스파라거스에 맺힌 이슬과 자욱한 안개가 신비롭게 느껴지는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 10월 8일, 사부작이 마련한 발달장애와 마을 포럼에 다녀왔습니다. 장애와 마을을 잇는 이야기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 허브데이를 앞두고 농장을 깨끗하게 정비했습니다. 쓰레기를 치우고, 도구와 자재를 정리하고 기울어진 천막 창고도 나무를 덧대어 반듯하게 수리했습니다.
- 18일~19일, 허브데이 <신나는 정원>을 열었습니다. 날씨가 안좋았지만, 농장을 찾아 온 이웃들과 알차게 잘 놀았습니다. 꿈뜰 블로그에 사진과 이야기를 올려 두었습니다.
❉ 상강, 10월 23일, 18/24절기 ❉
- 올 해는 서리가 늦은 탓에 10월 말에 고구마와 생강을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생강을 수확하고 가공하는 일은 11월 중순까지 이어졌습니다.
- 새온실 마지막 두둑을 완성했습니다. 정성을 많이 들인만큼 두고두고 오랫동안 식물들의 좋은 보금자리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 입동, 11월 7일, 19/24절기 ❉
- 홍동은 그동안 상강 지나고 일주일 안에 서리가 내렸는데, 올해는 입동날 서리가 내렸습니다.
- 1109 홍동면 거리축제, 1110 마르쉐@목동, 1110 홍성비건페스티벌에 참여했습니다.
- 입동날 아침 된서리가 내린 후로 영영 추워지고 마는가 싶었는데, 한동안 마치 가을이 다시 돌아온 것만 같은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붉게 물든 단풍나무를 볼 수 있어서 마음이 좋았습니다.
- 마늘과 튤립, 양파를 심었습니다.
❉ 소설, 11월 22일, 20/24절기 ❉
- 공기는 좀 차갑지만, 한 낮엔 햇살을 즐길 수 있을만큼 볕이 좋은 날도 있었습니다.
- 초중고 텃밭수업 시간에 군고구마를 구워먹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불을 피워보겠다고 도전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불을 피워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 1127 농촌형 통합돌봄 체계구축 ‘홍동다움’ 성과공유회에 다녀왔습니다. 꿈뜰은 올 한 해 동안 사회서비스공급주체 다변화사업 컨소시엄에 ‘장애+비장애 청년농업 인턴쉽’으로 참여했답니다.
- 1128 비바람이 심했어요. 눈은 조금 내렸지만, 우박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 대설, 12월 7일, 21/24절기 ❉
- 사박사박~ 간밤에 자라난 서릿발을 밟는 느낌이 재밌습니다.
- 11월 8일 꿈이자라는뜰에서 열린 좌담회 이야기가 <웹진이음>에 실렸습니다. 좌담) 충청 지역 장애예술 지형 -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터전을 만들기 위해
하지에서 동지사이,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을 함께 읽었습니다.
책모임 동무들과 수집한 문장들과 질문들 중에 일부를 소개합니다.
- 노르웨이에서 효과가 좋았던 모델이 있는데, 바로 ‘그린 케어’다. 이 서비스는 전통적인 농장을 지역 사회의 치매 환자들에게 개방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가짜 환경보다 좋고 환자에게 자극도 된다. 이런 시설들에서는 정규 간병인들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치매 환자들이 주방이나 정원에서 일을 돕거나, 나무를 패거나, 과수원에서 과일을 따거나, 함께 식사를 하거나 산책하러 갈 수 있다. p174 여섯번째 모임, 오늘의밑줄
- 어떻게든 부족함을 남기는 전체적인 상황이 아니라 아주 작은 순간에도 아름다움을 보는 법을 배웠다. ... 알다시피 (치매인) 나와 많은 친구들에게 행복은 순간의 마음챙김, 현재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과거는 종종 흐릿해질 수 있고 미래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 우리 모두는 더욱 현재를 살아야 하지 않을까? p209 일곱번째 모임, 오늘의밑줄
- 나에게 치매 진단을 해준 의사는 좀 더 긍정적인 말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네, 치매는 참 곤란한 병이에요. 하지만 이 새로운 꼬리표가 당신을 나타내지는 않을 거예요. 5분 전에 이 문을 열고 들어온 당신과 지금의 당신은 같은 사람입니다. 여전히 당신은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많은 것이 될 수 있어요." 예전에 내가 진료실을 떠날 때 이런 말을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p228 여덟번째 모임, 오늘의밑줄
- [책을 읽는 동안 떠오른 질문] 오늘의 나는 치매(노화)를 맞이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까? 어떤 태도와 습관이 내 몸에 배어 있으면 좋을까? 치매친화적인 거주 환경을 만들어 놓고 싶어.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세상에 머물고 싶은데,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 치매는 장애를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질문으로 가져오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다음에 이어서 읽을 책은 『사랑의 노동』입니다.
- 책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책들을 꿈뜰 블로그에 소개해두었습니다. 꿈뜰 블로그에서 밑줄과 질문들을 모아놓은 책모임 아카이브로 건너가실 수 있어요.
<소식을 주고 받는 이웃>들에게
- 계절이 바뀌는 모습과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농사짓는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싶어요. 철따라 이어지는 텃밭수업 아이디어도 소개하고, 스스로를 살피는 법과 서로를 보살피는 법을 공부하며 수집한 기록들도 꾸준히 공유하겠습니다.
- 한주간의 농장활동을 30초 이내로 압축한 <위클리꿈뜰>을 꿈뜰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매주 공유하고 있어요. 꿈뜰소식을 생생하고 빠르게 살펴보실 수 있지요.
- 지난 추분을 기점으로 문자메세지와 SNS를 통해 <00절기에 부치는 꿈뜰소식>을 발신하기 시작했어요. 꿈뜰 소식을 문자로 받고 싶으시면, 꿈뜰 링크트리 <소식을 주고 받는 이웃>을 통해 신청해주세요. 새로운 이웃들이 많아지도록 소개도 부탁드려요.
- 정기후원자분들에겐 춘하추동 절기에 <꿈뜰 일꾼들의 글과 엽서>를 소식과 함께 우편으로 보내드리고 있어요. 한 해를 갈무리하는 작업이 끝나면, 2024년 활동과 살림을 정리한 <갈무리 편지>도 이어서 공유하겠습니다.
- 자주 만나기는 어려울지라도 이렇게 소식을 주고 받다보면, 서로의 안부가 궁금해질테고,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 받는 일도 생길 것이고, 때로는 시의적절하게 서로에게 곁을 내어주는 만남도 이어지겠지요! 차근차근 ‘좋은 삶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관계’를 엮어 나가겠습니다^^
좋은 소식! 꿈뜰이 ‘공익법인’이 되었답니다.
- 꿈이자라는뜰은 비영리법인 중에서도 ‘사회적협동조합'이기때문에, 개인과 법인으로부터 기부를 받을 수 있어요. 이제 공익법인이 되었으니 (기부자가 세제혜택을 받기 위해 필요한) 기부금영수증도 발급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꿈이자라는뜰에 새로운 후원 이웃이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하반기에 공익법인이 되었지만, 기부금 영수증 발급은 2024년 1월부터 12월 사이에 사협 계좌로 후원해주신 모든 내역이 소급되어 적용됩니다. 내년 초, 발급 시즌에 한번 더 안내할게요.
- 후원계좌 농협 351-1310-6215-13 꿈이자라는뜰사회적협동조합
- 꿈뜰은 CMS 자동이체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정기적으로 꿈뜰을 후원하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뱅킹앱 또는 은행을 통해 후원계좌로 자동이체를 설정해주세요^^
- 꿈뜰이 사회적협동조합이 되면서 후원계좌를 위와 같이 새롭게 열었습니다. 이전 꿈뜰 계좌로 후원하고 계셨던 분들께서는 사협 후원계좌로 전환해주세요.
가을을 보낸 일꾼들의 이야기와 기록농사
👩🏻🌾 조조•생강을 위한 글을 썼습니다. 생강이 자란 계절, 그걸 다듬는 손길들을 떠올리는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뜨끈한 생강차 한 잔 마시며 겨울을 맞이해보아요❄️⛄️ (조조의 글은, 이 글의 맨 아래에 있습니다)

🙋🏻 비빔•겨울엔 역시 홍시!

🙆🏻♂️ 요르 •가을을 어떻게 지냈나? 생각하는 사이, 겨울이 왔어요.

🌕 달달 •생강의 계절이다 보니 생강입니다. 자주 마주하고 다가가고 싶은 무언가를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생강처럼 알싸하게 즐겨주세요.

🪨 짱돌 •단풍이 들고 있는 튤립나무 사진을 나눠요. 가을이 너무 빨리 지나갔어요. 아~ 겨울잠 자고 싶다!

🦗베짱 • 가을이 더웠어. 서울에 있느라 땅콩 캘 때 없어서 아쉬워. 겨울이 싫어. 상처가 아파서. 여름이 훨 나아.
🌺팽팽 • 가을이 오긴 했나….? 겨울이 오면 오는 거지 뭐. 생강이 안나
☘️꼬미 • 가을엔 날이 선선해서 일하는게 즐거웠어요.
🧙🏼♂ 보루 •‘알 수 없는 미래를 앞두고 막연한 불안에 짓눌리지 않기를, 구조적인 한계를 알고 있지만 원망과 한탄에 그치지 않기를,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한지 끊임없이 살펴보고 시도할 수 있기를, 변화시킬 수 없는 일들은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도하며 가을을 지냈어요.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을 읽는 동안, 웬디미첼의 이야기가 남 이야기 같지 않다는 생각이 여러번 들었답니다.

겨울을 맞이하는 꿈뜰 - 동지에서 춘분까지
- 날이 춥고, 낮이 짧고, 물이 어는 겨울에는 농사 일을 멈출 수 밖에 없습니다. 장애일꾼들은 12월 중순부터 2월 말까지 농장 일을 쉽니다. 비장애일꾼들은 겨울 농한기동안 한 해를 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 꿈이자라는뜰이 활동과 사업을 갈무리하는 과정에서 활용하는 지표를 공유합니다. 사람들의 인식은 부족한 부분을 더 쉽게 알아차리고, 부정적인 내용에 주목하는 경향이 크다고 해요. 채워진 것과 감사할 것, 축하할 것들을 살펴보는 일에 일부러 주의를 기울여서 균형을 맞춰보는 것은 어떨까요? <활동을 지속하는 힘> 엽서를 동봉합니다. + 다섯개의 지표를 만들게 된 과정은 <자기답게 생존하기>에서 살펴보실 수 있어요.
- 여러분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링크트리에 회신 창구를 열어놓겠습니다. <꿈뜰 일꾼들에게 보내는 이야기>에 편지를 읽은 소감, 안부와 소식 + 무엇이든 환영합니다^^

수상한 가을을 보내고
조조, 2024년 가을과 겨울 사이
이러다 다시 여름이 찾아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더위가 이어지던 수상한 가을이 지났다. 이제야 비로소 아침마다 서리 내린 풍경이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한 달 가까이 가래 낀 기침을 해대고 돌아다닌 까닭에 주위의 걱정을 샀다. 한 친구가 내 상태를 걱정하며, 생강 가루 한 병을 선물로 줬다. “생강은 다들 청으로 많이 마시는데, 설탕이랑 궁합이 좋은 편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전 가루를 물에 타서 마시고 있어요. 처음에는 ’뭐지?‘ 싶은데 마시다보면 먹을만 해져요.” 이 선물을 기점으로 나는 요즘 생강에 다소 집착하고 있다. 주전자에 물을 팔팔 끓인다. 친구가 준 생강 가루를 다 끓은 물에 푼다. 미량의 생강 가루가 긴 겨울나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물 마시는 걸 몸보신으로 여기며 매일 습관처럼 생강물을 끓인다.
수상한 가을과 마침내 찾아온 겨울 사이에 생강이 있다. 농장에서도 생강을 만난다. 생강밭에서 동료들의 작업이 한창이다. 인사와 함께 퍼지는 반가운 생강향. 주위를 은은하게 채우는 그 향을 맡으며 밭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제각기 다른 모양을 한 생강을 하나하나 만져가며 다듬고 있다. 갓 캐낸 생강은 캐낸 그 자리에서 다듬는다. 잎과 줄기를 꺾어 가지런히 내려둔다. 흙을 털어내고 잔뿌리를 뜯는다. 마른 종강을 떼어낸다. 그러면 손에는 손질된 생강만 남는다. 방금 밭에서 뽑아 올린 이 생강은 살벌한 무더위 속에서도 이어진 농사꾼의 부지런한 돌봄과 언제나 열심으로 최선을 다해 생을 살아가는 식물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우리는 무엇 하나 버리는 것 없이 생강을 맞이한다.
종강은 눈에 띄게 거뭇거뭇하다. 본인의 세를 불리고 우리에게 몇 배의 수확을 안겨주는 걸로 한 해 역할을 해냈다. 종강은 햇생강과 구분해서 따로 모아두었다가, 바쁜 일정이 끝나면 일부는 다듬어 김장 재료로 쓰고, 나머지는 건조기에 잘 말려 가루를 내기로 했다. 흘깃 보기엔 볼품없어진 종강이지만, 살살 다듬으면 쓸모를 갖춘 모습으로 변신한다. 잔뿌리와 잎과 줄기는 밭을 떠나기 전 땅 위에 고르게 덮어 둔다. 빈땅이 드러나지 않게 덮어두면 긴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을 맞이할 때 흙이 수분을 충분히 머금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올 한해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음을 담아 땅 위에 잎을 덮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잠자리 옆에 걸터 앉아 찬바람 드는 곳이 없길 바라며 이불을 매만지는 손길을 떠올렸다. 생강을 품고 있던 땅 위에 가지런히 푸른 이불을 덮어준다.
한 차례 다듬고 난 생강의 무게를 잰다. 우리 농장의 알생강을 주문해준 요리사 친구에게 보낼 양을 덜어낸다. 요리사는 전국 곳곳 작은 농장들의 생강을 받아 크리스마스 케이크로 변모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틈마다 흙이 껴 있기 일쑤인데다가 모양이 제각각인 생강을 다듬는 일은 더디고 고되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요리사 친구의 생강 다듬기 근황 소식을 보고난 후라서 그런지, 다듬기 쉬워보이는 굴곡이 적고 반반한 생강을 일부러 고르게 된다. 이제 곧이면 쫓기듯 일궈낸 모든 농사일을 끝내고, 따뜻한 조명 아래서 발 시려워하며 요리사 친구가 만든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황홀하게 맛보겠지.
택배 보낼 양을 뺀 후 본격적으로 생각진액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다. 착즙기에 넣기 전 마디마다 낀 흙을 씻어내야 한다. 고압 세척기로 생강을 씻긴다. 거칠게 붙어 있던 흙덩어리가 물총에 맞아 흩어져 흐르는 물과 함께 씻겨 진다. 얇은 껍질도 덩달아 벗겨진다. 밝은 노란빛의 생강 피부가 드러난다. 움틀 준비를 마치고 뾰족 솟은 붉은 뿔이 눈에 띄게 곱다. 한 차례 세척을 마친 생강을 큰 다라이에 물과 함께 담는다. 그 주변으로 동료들이 두런두런 모인다. 사람 손이 한 번 더 닿아야 다듬는 과정이 완전히 끝난다. 작은 칼로 아직 남아 있는 흙과 껍질을 벗기고 상한 부분을 도려낸다. 물에 손을 담구며 젖은 생강을 다듬는 일은 추워지는 계절에 고된 작업 중 하나다. 하루 목표량을 다 채워 다듬고 나면 김이 폴폴 나는 뜨거운 생강차가 절실해진다. 그래, 다 우리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이지. 새참 시간마다 생강진액을 마시며 ‘이렇게 좋은 걸 만드는 과정 중이구나’ 생각한다. 생강 향 만큼이나 은은한 자부심을 느낀다.
착즙기의 도움을 받아 잘 손질한 생강의 황토빛 진액만 뽑아낸다. 진액이 빠져나간 생강 찌꺼기는 따로 모아 볕에 말린다. 이 또한 잘 말려 가루내면 여기저기 요리에 요긴하게 쓰인다고는 하지만, 작년처럼 올해도 잘 말려 밭에 덮는 두꺼운 멀칭재로 쓸 예정이다. 깊은 냄비를 한 통 가득 채우는 양의 진액이 나왔다. 하루를 기다려 전분을 충분히 가라앉힌 후 진액만 따로 걸러 설탕과 함께 끓인다. 소독한 유리병에 담아내고, 생강 그림과 설명이 적힌 스티커를 병 앞면 중앙부에 붙이면 올해 생강 농사도 끝이다. 생강 농사가 끝날 때쯤이면, 올해도 끝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시간이 참 빨라. 시간이 참 빠르다. 올해는 유독 순식간에 지나갔어. 어떻게 시간이 간 줄 모르겠어. 삶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 걸까. 유독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자주 벌어진 한 해였지. 무릇 연말이면 할 법한 말들을 꺼내게 만드는 생강차의 능력.
생강은 여름의 무더위를 온전히 받아 고스란히 껴안고 있다. 찬바람에 코가 시린 날이 오면 따뜻한 물이나 데운 두유에 생강진액을 섞어 홀짝홀짝 마신다. 몸에 열이 오른다. 입 안 가득 알싸한 생강향이 담긴다. 꿀꺽하고 넘기면 따끔거릴 정도로 화한 생강의 열기가 느껴진다. 생강차가 지나는 길마다 뜨끈하다. 추위에 웅크리고 있던 둥근 몸에서 증기가 배출되는 것처럼,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온 따뜻한 숨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온다. “하.” 몸에 퍼지는 온기를 느끼며 달궈진 머그컵을 양손으로 쥔다. 겨울이 왔다. 여름 내리 뜨겁고 습하던 집은 야속하게도 계절과 발맞춰 빠르게 식는다. 기름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손끝과 발끝이 차다. 심장의 펌프질이 약해진 걸까? 혈관을 흐르는 따뜻한 피만으로는 내 몸의 끄트머리까지 데우기에 역부족이다. 머그컵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실어 온기를 바짝 끌어안는다. 따뜻하다 못해 뜨겁게 느껴지는 생강의 열감을 느끼며, 생강차가 몸속에서 길을 잃어 혈관을 타고 온 몸을 휘젓는 상상을 한다.

꿈이자라는뜰은 농•촌 - 농사라는 방식과 마을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장애를 비롯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살피고 서로를 보살피는 법을 익히며, 자기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좋은 삶을 함께 만들어 가는 농장입니다.
농장 오시는 길, 갈무리 편지, 책모임 기록, 아카이브, 소식을 주고받는 꿈뜰이웃 신청하기, 인스타그램으로 건너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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